혈액형 선입견, 하여간 설문조사가 문제

기사는 여기



또 혈액형으로 장난치는 발표 등장입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즉시 화낸다는 사람이 B형이 32%로 가장 많고, 복수하겠다는 답변은 A형에서만 나왔다라...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는데, 조금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아주 가관입니다.


한림대 심리학과와 한림응용심리연구소는 10일 화가 날 경우의 표현 방식과 관련해 심리학과 학생 111명(남학생 48명,여학생 63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화가 나는 상황에서 즉시 화낸다’라고 답한 경우는 B형이 32%로 가장 많았다.


표본.... 달랑 111명. 그것도 같은 학과.

그나마 남학생은 48명...;;

남학생을 혈액형별로 나눴을 경우 각 형마다 고작 10명 정도의 인원이었을 거 아닙니까. 한 사람의 답변에 따라 최대 10% 정도 비율이 왔다갔다하는, 그야말로 헐렁하기 그지 없는 표본이지요.
저걸 가지고 '혈액형별 화 잘 내는 순위'를 몇 퍼센트 차로 만들어서 연구 결과랍시고 내놓는 짓에는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입니다. 요즘 근거 없는 혈액형론이 뜨고 있으니까 대충 관심이나 끌어 보겠다는 겁니까 뭡니까. 게다가 무려 '심리학과'인데, 참 잘 하는 짓입니다.

그리고 저 헛소리를 또 좋다고 신문 기사로 만드는 국민일보는 뭐랍니까...
저런 기사 제 눈에 띄었으면 당장 신문 찢어버렸을 겁니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과학적으로 또 심리학적으로 혈액형과 성격은 단 1%의 관계도 없습니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 비롯된 소문인지(혈액형론이 진작 판치던 일본에서겠지만) 몇 년 전부터 혈액형에 관한 선입견이 우리 나라를 휩쓸기 시작했지요. 예전에 재미로 혈액형별 사랑법 같은게 오갈 시절만 해도 정말로 그저 재미 수준에서 그쳤는데, 인터넷이 일상이 되면서 요즘은 정말 심각해졌네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저걸 믿느니 차라리 별자리 궁합을 가지고 중매를 엮겠다 싶지만, 아무래도 이건 군중심리의 일종인 모양입니다. 주위에서 그렇다 그렇다 하면 정말로 믿게 되는.

여성들 사이에서는 그게 정말 심해서, 저 애 혈액형은 뭐뭐니까 성격이 어떨 거라느니 하는 이야길 들으면 이젠 지긋지긋합니다.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반절 이상의 확률로 '혈액형이 뭐야?' '너 혈액형 이거지?' 같은 질문이 꼭 나올 정도니까요. 알려줘서 아 그렇구나 하고 말면 아무 말 않겠는데, 그걸 가지고 그 사람은 이러이러할 것이다 하고 딱 못박아 버리는 부류가 의외로 엄청나게 많아서 문제입니다. '나 B형 남자랑은 절대 안 만나!' 같은 식의 말이 이제는 부자연스럽지 않게 되어버렸지요.
전 O형이고, 좋은 성격이라고 낙인(?)이 찍힌 혈액형이니 피해의식에 쓰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이건 너무 아니거든요. 21세기에 이런 섬뜩한 선입견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이러한 혈액형론이 널리 퍼지게 된 건 외부 요인도 굉장히 커 보입니다. 인터넷이야 사용자가 주인이니 어쩔 수 없어도, 서점에 가득 쌓인 흥미 위주의 혈액형 책이나 각종 일간지의 혈액형 자료를 보면 할 말을 잃게 되지요. 아직 그 어디에서도 혈액형에 대해 이 악물고 제대로 비판하는 곳을 찾은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각종 얼토당토 않은 조사를 통해 잘못된 믿음을 더 부추기기만 할 뿐...

언젠가는 이런 혈액형에 대한 유행(그저 한때 유행되는 미신으로만 보입니다)도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그 동안에 인간 관계에서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선입견이라는 것이, 한번 작용하기 시작하면 당사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계속 영향을 끼치게 되거든요.

만일 이런 현상이 훨씬 오래 지속된다면, 한 10년쯤 후 B형 남자는 결혼도 하기 힘들어지는 일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어지간하면 언론과 출판계부터 정신을 좀 차리고, 바른 정보를 알리는 일에 좀 더 힘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덧 : 아참, 혈액형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혈액형에 관련된 유머를 재미있게 보고, 주위 사람들 혈액형을 알아두기도 해요. 하지만 그걸 실제 성격 파악과 연관지어서 인물 평가의 한가지 도구로 삼아버리는 요즘 행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한번 써 본 거에요. 이글루스에는 거의 그런 분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by Jerry | 2005/11/11 02:34 | 세상만사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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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한님은 잡학편식(雜學偏.. at 2005/11/11 04:01

제목 : 그렇게 뜨고 싶었나...
혈액형 선입견, 하여간 설문조사가 문제 통계라는 것은 끼워 맞추기 나름이라며 신뢰도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표본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표본 집단이 편중되어있다면 신뢰도에는 심각한 타격을 입죠. (참조: '선우' 회원이 한국 젊은이의 대표?......more

Commented by 진냥 at 2005/11/11 03:03
절대 공감-ㅁ-/
사람이야 직접 접해봐야 아는거지 혈액형이 뭔 상관인고-ㅅ-
단순히 A,B,O,AB 넷으로만 나누는것도 웃기는 거잖아?
A형도 AA형과 AO형으로 나눌 수 있고 Rh+,Rh- 기타 등등 혈액형만으로 나누려 해도 따지고 들어가면 수십가지가 나올텐데.
간혹 재미로 웃어 넘기는 수준이라면 괜찮지만 누구처럼 남자[혹은 여자] 소개시켜달라면서 혈액형부터 물어보면 어이없음. 하하핫.
난 혈액형이 어떻네 하는거 전혀 관심없고 기억도 못하는데...
내가 이상한건 아니겠지?(그러나 가끔 내가 이상한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절실히 들 때도 있다. 주위 분위기나 위 기사 같은거 보면...)

흠... 뭐; 생물학적으로 따져봤을 때 의심할 여지 없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사람도 있으니 너무 흥분하지 마시게나...ㄱ-;;
Commented by 한님 at 2005/11/11 03:15
혈액형 별 인원으로 쪼개보면 신뢰도는 더욱더 떨어지죠.
대충 계산해보니 A형 45명 중 10명, B형 25명 중 8명, O형 25명 중 6명, AB형 16명 중 4명이라는 뜻인 듯. 어쩌라는 건지....
Commented by 역설 at 2005/11/11 10:44
과거에 http://dirox.egloos.com/497126 요런 소리를 했었죠.
한때 생물 배운 이로서 통탄스럽습니다 (어이)
Commented by 에필 at 2005/11/11 11:43
푸푸푸풉; 어제 이거 보고 좀 웃었죠. 심리학과 학생 백명으로 ABO를 나눠가진 지구인 약 60억명을 판단할 수 있을지.
Commented by 하늘보기 at 2005/11/11 16:41
믿지는 않지만 여자들이 한다고 정의한 그 반응들은 나도 꼭 하는편. 하하, 할말없을때는 최고거등.
Commented by NOT_DiGITAL at 2005/11/11 19:43
후후후. 전 바로 문제의 B형이죠. 뭐 혈액형론 같은 걸 믿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차단해준다는 점에선 오히려 정신위생상 좋다고 볼 수도 있죠. :-)

NOT DiGITAL
Commented by Jerry at 2005/11/12 01:12
진냥// 오, 아직 이글루 쓰고 있었구먼. 뭐 여자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여성층에서 혈액형에 매달리는 비율이 확연히 높으니까 그런 거지.

한님// 정말로 어쩌라는 건지 모를 일이지요...

역설님// 사실 혈액형 성격론도 시초는 유럽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민족 상대로 우월의식을 갖기 위한 조작된 이론였거든요. 한참을 잊혀졌다가 어느 일본 책에서 부활시켰는데, 그거에 사람들이 속아나고 있으니...

에필양// 그렇지. 백명이 아니라 수십만명을 가지고 조사를 해도 불가능할게야.

하늘보기// 오호라... 새로운 대응 방법이 될지도?

NOT_DiGITAL님// 그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나도 너네 싫어!'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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